길을 걷다 보면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귀를 의심케 하는 단어들을 종종 듣게 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나 쓰일 법한 비속어는 물론이고, 역사적 비극이나 특정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는 표현들이 아이들의 일상 대화 속에 아무런 여과 없이 섞여 나오는 모습을 보며 깊은 우려를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방송 프로그램인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346회 <조롱과 혐오… ‘위험 수위’ 10대 문화> 편은 온라인 공간에 갇혀 있던 비뚤어진 놀이 문화가 어떻게 청소년들의 현실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생생하게 고발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철없는 아이들의 일탈로 치부하기에는 그 수위가 매우 높으며, 우리 사회 전체가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들여다보아야 할 중대한 문제입니다.
도를 넘은 청소년 문화
과거의 청소년 은어나 유행어가 단순히 기성세대와의 차별화를 위한 아기자기한 장난 수준이었다면, 오늘날 10대들 사이에서 소비되는 유행어와 놀이 문화는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합니다. 가학적이고 조롱 섞인 밈(Meme)이 주류를 이루며,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 자체를 유희로 소비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신들이 쓰는 단어가 어떤 역사적 아픔을 담고 있는지 혹은 누군가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재미있고 자극적인가’ 하는 점입니다. 도덕적 통제 장치가 사라진 청소년들의 언어 생태계는 폭력성을 연료 삼아 매일같이 무섭게 팽창하고 있습니다.
배재고 야구부 응원 논란
이러한 현실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 바로 고교 야구 경기장에서 발생했습니다. 청룡기 고교야구대회에서 서울 배재고등학교와 광주제일고등학교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던 도중이었습니다. 경기가 배재고의 우세로 기울던 8회말 공격 상황에서, 더그아웃에 있던 배재고 선수들이 일제히 몸을 흔들며 기괴한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외친 구호는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그리고 “탱크데이~”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상대 팀의 기를 죽이기 위한 응원이 아니었습니다. 광주 지역의 아픈 역사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조롱하기 위해 극우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비하 표현이었습니다. 과거 논란이 되었던 특정 기업 관련 발언과 군부 독재 시절의 진압 도구인 탱크를 직접 언급하며 상대 학교 학생들과 해당 지역의 비극을 대놓고 희화화한 것입니다.
이 사태는 스포츠맨십을 송두리째 뒤흔들며 사회적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스포츠 윤리를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로 규정하고 배재고 야구부에 6개월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씁쓸한 것은 징계 이후의 풍경이었습니다. 일부 어른들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 같은 조롱 행위를 단순한 표현의 자유라며 옹호하고 나섰고, 아이들의 잘못을 바로잡아주어야 할 어른들이 오히려 정파적 대립 구도로 논란을 키우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교실로 침투한 조롱 밈
야구장뿐만이 아닙니다. 방송에서 조명한 교실의 풍경은 더욱 처참했습니다. 이제 온라인상의 혐오 문화는 소수 누리꾼들의 일탈이 아니라, 10대들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되어 교실 바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 장애인, 다문화 가정 자녀 등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향한 비하 발언이 매일같이 놀이처럼 소비됩니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국가적 재난이나 참사 피해자들을 희화화하는 자극적인 영상물과 합성 이미지들이 단체 대화방을 통해 죄책감 없이 전송됩니다.
더욱이 사건 당시에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아주 어렸던 아이들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극우 사이트의 왜곡된 콘텐츠를 단순한 놀이 코드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역사는 성찰과 추모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낄낄거리며 소비할 수 있는 한 조각의 자극적인 반찬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혐오를 놀이로 즐기는 이유
그렇다면 왜 우리 청소년들은 이토록 혐오와 조롱에 열광하게 되었을까요? 가장 큰 원인은 ‘혐오의 유희화’와 스마트폰을 통한 극단적인 익명성입니다. 스마트기기와 소셜 미디어에 완벽히 길든 아이들은 더 자극적이고 더 금기시되는 영역을 건드릴 때 더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친구 관계 속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이러한 자극적인 놀이에 동참해야 한다는 군중 심리도 크게 작용합니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발언이라도, 친구들이 모두 웃으며 사용하는 밈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동화되어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표현이 지닌 역사적 사실이나 맥락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는, 당장 또래 집단 내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속감과 재미를 우선시하는 왜곡된 또래 문화가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만든 일탈의 거울
결국 청소년들의 비뚤어진 문화는 우리 기성세대가 구축해 놓은 혐오 사회의 거울에 불과합니다. 정치권에서 쏟아내는 극단적인 언어, 조회수와 수익만을 좇아 자극적인 조롱 영상을 양산하는 성인 유튜버들, 그리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남녀 갈등과 지역 감정 조장 등 어른들이 벌여놓은 판을 아이들이 그대로 보고 배웠을 뿐입니다.
심지어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이를 따끔하게 훈계하기는커녕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방조하는 일부 어른들의 무책임한 태도가 문제를 더 키우고 있습니다. 이제는 단순한 처벌이나 훈계를 넘어, 청소년들이 올바른 역사관과 인권 의식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돕는 실질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무엇이 유머이고 무엇이 폭력인지를 스스로 구별해낼 수 있는 브레이크를 아이들의 마음속에 달아주어야 합니다.
Q&A
Q1. 배재고 야구부 사건에서 학생들이 외친 구호가 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나요?
A1. 고등학교 선수들이 스포츠 경기 도중 상대 학교의 지역적 배경을 겨냥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비극과 진압 과정을 희화화하는 문구(스타벅스, 탱크데이)를 응원 구호로 단체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타인의 아픔을 조롱한 도를 넘은 행위로 여겨져 체육계와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Q2. 청소년들이 역사적 비극이나 약자 비하 표현을 죄책감 없이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2. 인터넷과 SNS를 통해 전파되는 왜곡된 밈들을 역사적 사실이나 맥락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단순한 ‘재미있는 유행어’나 ‘놀이’로만 인지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익명성에 기대어 자극적인 표현을 쓸 때 또래 집단에서 주목받고 소속감을 느끼는 왜곡된 또래 문화도 큰 원인입니다.
Q3. 10대들의 이러한 위험한 조롱 문화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요?
A3. 단순히 잘못을 처벌하는 것을 넘어 학교와 가정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접하는 정보의 사실 여부와 도덕적 심각성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하며, 기성세대 역시 온라인과 정치권에서의 혐오 표현을 자제하는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