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리스크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세계 안보 지형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전환의 시기에 대한민국 방위산업은 단순한 무기 공급처를 넘어 글로벌 안보 네트워크의 핵심 동반자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협력 관계가 새로운 차원으로 격상되면서 ‘한-나토 방위산업 파트너십 2.0’ 제안이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파트너십 제안은 그동안 개별 국가를 상대로 거두었던 수출 성과를 넘어, 나토라는 거대한 안보 동맹 체제와 제도적 협력 기틀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K-방산의 역사적 변곡점이 될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글로벌 안보 위기 속에서 한국 방산이 나토와 손을 잡게 된 구체적인 배경과 핵심 내용,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을 전문가의 시각으로 상세히 분석해 보겠습니다.
글로벌 안보 위기와 K방산의 기회
전 세계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 미·중 갈등 심화 등 이른바 ‘다중 위기(Polycrisis)’에 직면해 있습니다. 유라시아 대륙 전반에 걸친 안보 불안은 각국에 신속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국방력 강화 방안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실용주의 평화’를 지향하는 외교 노선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의 안보를 책임지는 나토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가 글로벌 안보 및 공급망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일본,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인도·태평양 파트너국(IP4)의 일원으로서 나토와의 공조를 다각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군사적 연대를 넘어 경제적, 기술적 안보 리스크를 분산하고 공동 대응하기 위한 다자간 협력 메커니즘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방산 기업들은 뛰어난 기술력과 압도적인 가성비,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신속한 납기 능력을 입증해 왔습니다. 무기와 탄약의 적기 공급이 절실한 나토 동맹국들에 한국은 글로벌 방산 공급망의 공백을 메워줄 수 있는 유일무이하고 신뢰할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단순 수출을 넘어선 새로운 패러다임
과정에서 돌이켜보면 지금까지의 K-방산은 이른바 ‘방산 1.0’ 단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는 폴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등 개별 나토 회원국을 대상으로 우수한 완제품 무기체계를 수출하는 형태였습니다. 개별 계약 중심의 완제품 수출은 단기적으로 거대한 성과를 올릴 수 있었지만, 지속 가능한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장기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존재했습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완제품 조달을 넘어 안정적인 군수 지원과 정비 체계 구축의 중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나토 동맹국들은 지속 가능한 공급망과 현지 생산 역량을 함께 확보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와 방산 업계는 개별 국가 단위의 단순 판매 방식에서 벗어나 나토 전체를 아우르는 다자간 협력 체계로의 전환을 꾀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단순 완제품 수출의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안보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진입하기 위한 ‘방산 파트너십 2.0’의 출발점입니다.
파트너십 2.0_공동 개발과 MRO
‘방위산업 파트너십 2.0’의 핵심은 한마디로 ‘단순 수출국에서 공동 개발자이자 운영 파트너로의 격상’입니다. 기존의 일방향적인 수출 형태를 양방향적이고 입체적인 협력 관계로 전환하는 패러다임의 시프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공동 연구개발(R&D), 공동 생산, 그리고 공동 MRO(유지·보수·개조·운영)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반도체, 배터리, 첨단 제조 기술력과 나토 회원국들이 보유한 정밀 무기 계통의 첨단 시스템 통합 노하우가 결합하는 시나리오입니다.
필자가 방산 업계 전문가들과 논의해 본 결과,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MRO 시장’입니다. 무기체계는 한 번 도입하면 수십 년간 운용해야 하므로, 후속 군수 지원과 정비 역량이 필수적입니다. 동유럽 등 거점 지역에 K-방산 공동 정비창과 부품 공급 기지를 구축하게 된다면, 우리 기업들은 수십 년간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하는 록인(Lock-in)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는 유기적인 군수 공급망을 함께 설계하고 운영하는 기술적 동맹의 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15조 조달 시장을 여는 기본협정
이번 파트너십의 실질적인 제도적 토대가 되는 것은 바로 ‘한-나토 조달 기본협정(Procurement Framework Agreement)’ 협상의 공식 개시입니다. 대한민국과 나토 사무총장 간의 면담을 통해 공식화된 이 협상은 양측의 군수 및 방산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그동안 국내 방산 기업들은 뛰어난 성능의 제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토 자체의 조달 절차나 법적 장벽 때문에 나토 공동 재원으로 진행되는 사업에 직접 참여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개별 국가와의 계약에 의존하거나 복잡한 우회 절차를 거쳐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조달 기본협정이 체결되면 나토와 파트너국 간의 조달 계약에 필요한 표준 규격과 법적·행정적 절차가 일원화됩니다. 결과적으로 국내 대표 방산 기업들은 연간 약 15조 원 규모에 달하는 나토 공동조달 시장에 우회 절차 없이 직접 입찰하여 참여할 수 있는 고속도로를 확보하게 됩니다. 이는 기업의 수익 다변화는 물론 글로벌 공신력을 한층 더 높여줄 핵심 열쇠입니다.
글로벌 표준화와 K방산의 미래
한-나토 방위산업 파트너십 2.0이 연착륙할 경우 기대되는 효과는 상상 이상으로 큽니다. 가장 먼저 K-방산의 ‘글로벌 표준화 탑승’을 꼽을 수 있습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나토 표준(NATO Standardization Agreement)을 충족하고 상호 운용성(Interoperability)을 공식적으로 획득하게 되면, 향후 유럽 전역은 물론 서방 진영 우방국 전체로의 수출 다변화가 매우 수월해집니다.
또한 폴란드 등 동유럽 현지에 K-방산 생산 시설과 유지보수 거점을 마련함으로써, 현지 고용 창출과 기술 협력을 통한 ‘윈윈(Win-Win)’ 모델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이는 유럽 내부에서 일고 있는 자국 방산 보호주의 장벽을 극복하는 훌륭한 해법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비살상 무기 지원 및 인도적 재건 지원을 병행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의 책임 있는 기여국으로서의 브랜드 가치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도 적지 않습니다. 우선 조달 기본협정의 신속한 타결을 위한 정부 차원의 법적·행정적 조율 속도를 높여야 합니다. 또한 프랑스 등 일부 나토 회원국이 주장하는 ‘유럽 방산 우선주의’ 정서와 첨단 기술 이전에 대한 민감성을 지혜롭게 조율할 수 있는 정교한 협상 전략이 필요합니다. 동북아 안보와 대유럽 안보 연계에 따른 주변국들의 역풍을 관리하는 영리한 다자 외교적 스탠스도 상시 가동되어야 할 것입니다.
Q&A
Q1. ‘방산 파트너십 2.0’이 기존 완제품 수출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기존 ‘방산 1.0’이 국산 무기를 개별 국가에 완제품 형태로 판매하고 납품하는 데 치중했다면, ‘방산 파트너십 2.0’은 나토와 함께 무기를 공동으로 연구개발(R&D)하고 현지에서 공동 생산하며, 사용 중인 무기의 유지·보수·운영(MRO)까지 전 과정을 함께하는 긴밀한 ‘기술적·인프라적 안보 동맹’을 구축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Q2. 한-나토 조달 기본협정이 실제로 타결되면 우리 기업에 어떤 혜택이 돌아가나요?
그동안 국내 방산 기업들은 까다로운 법적 절차와 표준 규격 문제로 연간 15조 원에 달하는 나토 자체의 공동조달 시장 입찰에 직접 참여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협정이 타결되면 규격과 절차가 일원화 및 표준화되어, 국내 주요 방산 기업들이 복잡한 우회 절차 없이 직접 나토 조달 입찰에 참여해 거대한 신규 시장을 선점할 수 있게 됩니다.
Q3. 향후 K-방산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중장기적 과제는 무엇인가요?
유럽 나토 회원국 내부에서 발생하는 ‘유럽 방산 우선주의’ 정서와 자국 산업 보호 정책을 극복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이를 위해 단순 판매자가 아닌 현지 공동 생산 파트너로서의 입지를 굳혀야 합니다. 아울러 다자 안보 협력 강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주변국들과의 지정학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영리하고 유연한 외교적 스탠스 유지가 매우 중요합니다.